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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나는 손이 좋았다. 뒤쳐질 때 앞서가던 사람들이 내어주는 것도 손이었고, 뒤쳐지는 자에게 내밀어줄 수 있는 것도 손이었다. 그리고 그 녀석이 내밀어준 것도 따뜻한 손. 그와 함께 살아갈 이유를 찾아주겠다고 한 그때의 상황을 난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 친구들이 나에게 준 관심은 이제 난 살아갈 이유를 찾았다고 자부할 수 있을만큼 커다란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 남은건, 차디찬 그들의 시선 뿐.
"판테온..?"
약간의 당혹감이 서린 목소리에 앞에 있는 자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의 빨간 눈동자는,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것 같아서 꼭 약간의 무시를 담은 것 같았다. 뭐 항상 그의 시선은 좋지는 않았지만.
"왜 거길 가는거지?"
"한번쯤은, 이런 외출도 좋잖아?"
그가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어보인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보기좋은 미소는 아니다. 외출이라니 지금 이런 상황에서 그와 같은 여유를 느끼는 게 조금 어색하지만 이상하리만큼 이끌리게 되는 그의 웃음에 난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러자 그가 만족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내 긴 머리카락을 만지작 거리는 것이었다.
그들이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봉인되었다가 깨어난 직후여서 수백년이 흘렀다는 감각도 없어 마치 추억들이 어제일 처럼 너무나도 생생한데.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기 어려웠다. 기쁜 마음으로 찾아간 친구들에게서 들려오는 말들은 모두 나의 정체를 묻는 질문과 경계하는 말 이 두가지 뿐. 게다가 나에게 손을 내밀어준 존재마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은 훨씬 나를 힘들게 하였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던 나를 유일하게 기억하는건, 나를 이렇게 만든 검은 마법사였다. 그걸 안 나는 스스로 저주스럽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였다. 내가 죽어도 검은 마법사는 죽지 않는다는 것에 깊은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그가 소멸되면 나도 같이 소멸된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살짝 겁이 나기도 해서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난 느꼈다. 마음속 깊이, 아주 깊이 누군가가 나를 기억해준다는 사실에 무척이나도 기뻐하고 있었다. 그 기억해주는 대상이 비록 날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라 해도 기쁨과 동시에 안도감마저 느꼈다.
그래서 그런걸지도 모른다. 그의 붉은 눈동자에 이끌려버린 것이.
"이런 상황에서 나가도 되겠어?"
결국 마음속에 있던 말을 그대로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러자 한동안 내 머리를 만지작 거리던 검은 마법사가 눈동자만을 굴려 나를 쳐다보았다. 보는 사람이 민망해질 정도로 한동안 뚫어져라 쳐다보았지만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빛을 맞받아주며 대답을 재촉했다.
"어차피 사람들이 내가 세상의 원흉이라는 사실을 알겠나 싶다만."
살기만 감춘다면 말이지. 그의 말투는 마치 당연한 걸 왜 묻냐는 식으로 들렸다. 하기야 세상에 알려진 검은 마법사의 외형은 거대하고, 검은 로브로 몸을 감싸고 있고, 굵은 쇠사슬이 옆에 있는 모습인데다가 그의 하얀마법사 시절의 모습은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하고 있다. 즉 이대로 나가도, 적어도 누가 검은 마법사를 보며 겁을 먹고 도망갈 일은 없다는 것이다.
일부러 그런건지 아님 당연해서 말을 하지 않은건지 그가 나에게 '넌 어차피 잊혀지니까 상관없잖아' 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차원을 넘나들때마다 잊혀지고 사라지는 존재 덕분에 딱 군단장 일을 하면 좋을 텐데 그는 굳이 나에게 권유를 하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팔짝 뛰며 미쳤냐고 할 소리지만 나는 그래도 그가 나름 생각해준 거라고 느꼈다.
"가서 뭐하려고."
"산책이지. 뭘 더 바래?"
검은 마법사가 팔짱을 끼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의 얼굴은 확실히 잘생긴 외모였지만 주변의 어두운 기운과 무표정이 한층 분위기를 가라앉게 보이게 하였다. 다른 사람이 봤으면 그대로 얼어버렸을 법한 차가운 표정이다.
그의 앞에 쓸려내려온 검은 머리가 아래로 스르륵 흘러내렸다. 나처럼 긴 장발이지만 나보다 훨씬 더 길고 부드러운. 대충 눈어림으로 보니 허리를 조금 넘을 것 같은 길이었다.
"가기싫어?"
조소를 지으며 검은 마법사가 물어온다. 그의 조소에 살짝 기분이 상한 나는 그를 조금 노려보며 아니거든? 하고 나즈막히 읊조렸다. 그에 검은 마법사는 조소를 지우고, 대신 아까의 차가운 표정을 언제 지었냐는 듯 아주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그가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걸 생각조차 하지 않은 나여서 이럴때마다 항상 속으로 놀라고는 한다. 내가 계속 뾰루퉁한 표정으로 서있자, 검은 마법사가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내 이마에 살짝 입을 맞췄다. 그리고는 귓가에 속삭였다.
"귀찮은 군단장 녀석들이 오기 전에 빨리 나가버리자."
심장이 뛸 정도로 나즈막하고 유혹적인 그의 목소리에 나는 결국 그에게 희미하게나마 미소를 지어보였다.
[난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어.]
[... 그렇다고 죽을 이유도 없잖아? 나랑 같이 가자. 찾아줄게, 살아갈 이유.]
따뜻했다. 차가운 내 손과는 달리 그의 손은 굉장이 따뜻했다. 처음에는 머뭇거리며 잡았던 손이 상상 이상으로 열이 많아서 나도 모르게 표정이 풀어졌지. 이전에 홀로 떠돌아다닐 때 많이 겪어보았던, 그 차갑던 시선과 함정의 구렁텅이가 아닌 진실된 마음과 관심들. 프리드, 그는 약속을 지켜주었다. 나에게 처음으로 '친구'라는 걸 만들어주었고 살아갈 이유도 찾아주었다. 그리고 난 그런 프리드가 사라지는 걸 원하지 않아서 스스로 재물이 되었다. 그 결과는 비록 끔찍하고 잔인했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여섯갈래길에 도착한 우리들은 차원의 포탈로 이동했다. 가는 도중에 우리들을 힐끗거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검은 마법사는 신경쓰지 않는것 같았다. 오히려 그들의 시선을 즐기는 것 같았다. 하기야 건장한 사내 둘이서, 그것도 장발인 남정네들이 나란히 걷는것은 조금 이상해보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윽고 포털 앞에 서자 검은 마법사가 스스럼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나는 당황하여 들어가지 못하고 쭈볏거렸다. 이 포털 안으로 들어가면 왠지 검은 마법사마저 나를 잊어버릴 것 같았다.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한 포털인가. 여기서 한발자국 더 움직여 안으로 들어간다면 또 다시 차원을 넘고, 존재가 지워진다는 고통을 맛보는 것이었다. 방금 지나가며 날 흘낏 본 사람들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 마치 미우미우 마을 사람들과 헬레나처럼. 그까지 생각이 미치자 손이 조금씩 떨려오기 시작했다.
이미 수도없이 많이 겪었다. 차원을 넘을 때마다 존재가 지워지고 이미 수없이 많은 인사를 했던 사람들에게 다시 나를 소개하는 것은 정말 괴로웠다. 그게 바로 이 문 때문이었다.
툭. 누군가가 나를 밀치며 포털 안으로 들어간다. 네다섯명의 무리들이 자연스레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결국 '부럽다' 라는 생각에까지 미친다. 아무런 걱정도 생각도 없이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부러웠다. 그러다가 나는, 한동안 계속 서있다가 눈을 꾹 감고 그 포털 안으로 한 걸음을 내딛었다.
파란 하늘과 눈에 선명히 보이는 예쁜 행성. 판테온. 넘었다. 차원을 또다시 넘었다. 이제 저쪽 세상에서 난 또 더이상 존재가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입안이 썼다.
주위를 둘러보자 내 옆 조금 떨어진 곳에 검은 마법사가 서있었다.
그는 팔짱을 끼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순간 나는, 방금 포털 앞에서 한 그 쓸데없는 걱정이 들었다. 만약, 이마저 나를 잊어버린다면..
기다리느라 목 빠지는 줄 알았네. 하지만 역시 그 걱정은 필요 없다는 걸 알려주는 듯 그가 살짝 투덜댄다. 이럴때마다 가끔 이자가 진정으로 세상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그 검은 마법사가 맞는지 의심이 갔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도 안도감이 더 컸다.
"미안."
"가자."
검은 마법사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눈이 살짝 휘어지도록 웃으며 말하는 그에게서 마치 누군가가 겹쳐보여 난 황급히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검은 옷 사이로 나와있는 새하얀 손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머뭇거리다가 이내 그 손을 잡았다.
따뜻해. 내 손이 차가운건지 그의 손이 뜨거운건지 몰라도 따뜻했다. 꼭 그때, 프리드가 나에게 손을 내밀어준 그 때처럼. 조금 올라오는 감정에 난 그의 손을 더욱 세게 잡았다.
놓고싶지 않았다. 유일하게 내밀어주는 이 따뜻한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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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썼다.
어디있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그에게 편지를 썼다. 정말 이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죽었을지도 모르는 그에게 편지를 썼다. 난생 처음 누군가에게 써보는 글인데다가 그 글 조차도 예전 친우에게서 배운 기초적인 글자라 글씨는 삐뚤삐뚤 했다. 그러나 아무렴 어떤가. 알아보기만 하면 될 것을.
'꼭 만나자.'
단 네 글자만을 종이에 적어 정성스럽게 돌돌돌 말아 작은 빨간 끈으로 묶었다. 나름 외관상 근사해보여 한편으로는 약간 우쭐한 마음도 들었다. 근처 해변을 돌아 얻은 유리병에 바닷물을 반쯤 담궈 손목을 이용해 돌렸다. 안에 담긴 물이 돌아 물속의 작은 회오리를 만들어냈다. 그걸 재밌게 바라보던 나는 이윽고 그 회오리가 없어지자마자 병을 거꾸로 뒤집어 안에 있는 물을 빼냈다. 처음에 병 벽면에 붙어있던 작은 먼지들이 빠져나가 한껏 더 깨끗해보였다. 병을 탈탈 털어내 안에 있는 물기가 다 빠지도록 했다. 물기를 빼내지 않으면 종이가 다 젖어버릴 테니 말이다. 바람의 정령을 불러내어 완전히 물을 증발시켜버리고, 정성스레 적은 편지지를 그대로 병에 넣고 코르크 마개로 입구를 완전히 막았다. 그리고는 해변 가까이로 다가가 병을 바다에 띄워보냈다.
괜스리 웃음이 난다. 이런 모습을 니가 본다면 얼마나 웃어댈까.
파도에 의해 점점 멀어져가는 유리병 편지를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부디.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어둑어둑한 저녁, 한적한 해변길. 사람도, 그 흔하디 흔한 몬스터도 없는 아주 조용하고 삭막한 해변에 단 한사람만이 쪼그려 앉아있다. 어쩐지 그의 표정은 매우 슬퍼보이기도 하고 외로워 보이기도 하여 다가가서 위로를 해주고 싶을 정도였으나 아쉽게도 그래줄 사람이 있지 않았다. 모래밭에 쪼그려 앉아있던 그 남자는, 그의 갈색의 곱슬머리를 손으로 정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탁탁 옷에 묻은 모래를 털어내고 돌아가려는 듯 기지개를 쭉 펴던 그의 눈에, 반짝이는 어느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저녁놀의 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물체는 직접 확인하지 않아도 유리제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이내 발걸음을 옮겨 그 물체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것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남자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서려있었다.
"편지...?"
유리병이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딱 봐도 편지였다. 작은 실로 묶여져있는 돌돌 말린 종이. 무엇에 이끌린 건진 모르겠지만 그는 자기도 모르게 입구에 막혀있던 마개를 빼내고 안에 들어있던 종이를 꺼냈다. 두근두근두근. 왜 이렇게 가슴이 뛰는 지 몰랐다.
남의 편지를 읽는다는 기대감은 절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막연히 두근거린다? 그것도 아니었다.
사실 잘 모르겠다. 알 수 없었다.
그는 종이를 감싸던 끈을 조심스럽게 끌고 편지지로 추정되는 종이를 펼쳤다.
'..........뭐야.. 백지잖아.'
살짝은 실망한 기색이 들어난 그가 '아무것도' 적혀져있지 않은 그 종이를 들고 이리봤다가 저리봤다가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그도 그럴것이 그 종이에는 단 한 글자도 적혀져있지 않은 것이다. 펜 자국도 없어 무언가를 적으려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종이 가운데에 물방울 하나가 툭 떨어지더니 서서히 없어지며 가운데가 축축해졌다. 그에 당황한 남자가 손을 들어 자기 눈가에 가져다댔다. 선명하게 묻어나오는 물기.
'어째서..?'
그 종이를 한참동안이나 들여다보던 그는 이내 그 것을 다시 돌돌돌 말고는 자신이 가지고있던 고무줄로 묶어 유리병에 넣었다. 새로운 마개로 다시 입구를 막고는 바다에 조심스레 띄워보냈다.
"진짜 가려던 사람에게 가기를."
작게 웅얼거리던 그는 만족한다는 듯 작은 미소를 입가에 그리고서 이미 꽤 어둑해진 하늘을 뒤로하였다.
바다에 두둥실 떠내려가던 그 유리병은, 이젠 미련이 없다는 듯이 서서히 파도속으로 깊게 잠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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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선의의 경쟁을 하고, 사랑인지 우정인지 모를 감정을 피워나갔었다. 단지 그가 농구를 하며 코트에서 뛰는 모습이 너무 매혹적이고 아름다워서, 단지 이건 동경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 시킨건지도 몰랐다. 볼 때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켰고 그에게 시합을 져도 아쉬움보단 기쁨이 더 컸다. 이유는 그가 행복해했기 때문이었다. 이게 단지 동경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나도 모르게 그에게 고백을 하고 난 뒤였다.
written by. 슈리
대학생이 되자마자 한 이 어이없고도 뜬금없는 고백이었다. 그는 잠시 당황한 듯 하다가 풋 하고 작은 웃음을 내뱉었다. 그에 나는 얼굴이 새빨개져 실언을 한 나를 탓하며 어물쩡댔다. 하지만 나만큼이나 발그레해진 그의 얼굴을 보니 확신이 들었다. 적어도, 차인건 아니구나 하고.
그가 도쿄로 대학을 온 덕분에 나와 그는 만나는 시간이 길어졌다.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주로 데이트는 영화 관람이라던가 맛집 투어, 농구경기 관람 등 일반 친구들과도 즐길 수 있는 것으로 골랐다. 그리고 몇번은 다른 친구들과도 (주로 쿠로코나 아오미네) 같이 만났다. 그래야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의심받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친구들, 기적의 세대들에게는 끝까지 비밀로 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들 중 한 명이라도 안좋은 인식을 갖고 있다면 곤란했다. 다행스러운건 고등학교 때 그나마 몇번 만난 적 있어 다른 친구들도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몇달 지나지 않아 우리들의 관계가 쿠로코에게 들켜버렸지만.
대학을 다니는 4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사귄지 200일 되는 날 그의 집 앞에서 처음으로 짧은 입맞춤을 나눴고, 1년째 되는 날 우리집에서 사랑을 나눴다. 방학이 되면 거의 매일 붙어있다시피 다녔다. 그가 교토에 있는 본가에 내려간다던가 내가 아버지를 뵈러 미국으로 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전날은 꼭 같이 보냈다. 물론 4년이란 세월 동안 많이도 싸우고 헤어졌지만 결국 서로를 찾는 바람에 이별도 얼마 가지 못했다. 그런 우리들을 보면서 쿠로코는 매일같이 한숨을 쉬어댔다.
금요일이면 그의 집이나 우리 집에서 같이 저녁을 먹고 같이 하룻밤을 지내고 같이 토요일을 즐겁게 보냈으며 일요일 저녁이 되면 아쉬운 작별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어느정도 안정이 되면, 일본을 떠나 미국에서 같이 살자는 조심스런 고백도 했고 환한 미소로 답해주는 그를 보며 밝은 미래를 꿈꿨다.이러한 행복은, 우리 둘 사이를 그의 아버지가 아시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세이쥬로의 아버지는 이 사실을 알자마자 그를 교토로 불렀다. 난 곧바로 그의 집 앞으로 달려나갔으나 이미 떠난 뒤였다. 나중에 아버지를 잘 설득해보겠다는 내용이 적힌 메일이 왔지만 1달이 지나도록 핸드폰에는 아무런 알림도 뜨지 않았다. 새로 준비하고 있던 소방관 시험도 손에서 놓은 채 폐인처럼 핸드폰만 들여다보며 지낸지 2달이 훨씬 넘어서야 메일이 한 통 왔다. 하지만 기다리던 그에게서가 아닌, 그의 아버지께로부터 온 메일이었다.
처음 뵙는 그의 아버지는 나이가 무색하게 품어져 나오는 느낌이 있었다. 한동안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다가 차를 몇 번 마시시더니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헤어지게. 단 한마디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세이쥬로는 장차 큰 기업을 물려받게 될 것이고 당연히 다음 후계자가 나와야 할 것이란 말씀도 차례대로 하셨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당연하게도 동성끼리의 연애라는 것이었다. 이 말에는 기업의 이미지에 타격을 주고싶지 않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아들의 마음보다 기업의 이미지를 더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이 우습고 같잖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고개를 숙이고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세이쥬로를 딱 한번만 만나게 해줄테니 그 다음에는 제발 깔끔히 잊고 그 아이를 놔줘.
경고가 확연히 드러나있는 부탁에 난 끓어오르는 절망을 애써 누를 수밖에 없었다.
안내받은 방으로 들어가자 한 메이드가 차를 내놨다. 평소에 그가 좋아하던 차다. 두 손으로 컵을 잡고 코를 가까이 대니 향긋하면서도 씁쓸한 차 내음이 올라왔다. 한번 홀짝이니 차 내음과는 또다른 맛이 입안에 퍼지는게, 왜 그가 이 차를 가장 좋아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 기분을 느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달려오는 발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문을 벌컥 열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타이가?!
순간적으로 찻잔을 놓칠 뻔했다. 떨리는 손을 가까스로 내려 찻잔을 놓은 후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니 위태롭게 서있는 세이쥬로의 모습이 보였다. 머릿속에서 달려가라는 명령을 미처 내리기도 전에, 그가 먼저 나에게 달려와 안기는 것이었다.
내 품에 안긴 그는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보다 훨씬 말라있었다.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 듯 얼굴도 많이 상해있었다. 나보다 원래 몇센티는 더 작은 그였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더욱 작아보였다. 등을 쓰다듬으며,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독여주자 한참을 내 품에서 나오지 않았다.
우리 잠시만 헤어지자.
그가 조금 진정이 되었을 때, 절대 하고싶지 않았던 말을 겨우겨우 내뱉었다. 아직 눈물로 젖어있는 눈을 들어 나와 마주했다. 같은 붉은색임에도 불구하고 더 연하고 부드러운 눈동자에 내가 담겼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눈을 가까이서 마주하는건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그것만은 절대 하고싶지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만을 위해서."
나는 당연하다는듯 대답했다.
이해가 가지않는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서로를 잊지 못한 채 이런 생활을 지속하다보면 결국 아프고 상처받는 것은 우리라는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체념해야할 시기였다. 아직 우리는 사회적으로도 불안정한 위치에 있었고 더군다나 세이쥬로는 곧 세간의 집중을 받는 자리에 올라서게 될 것이었다. 서로가 안정될 때까지만. 딱 그때까지만 헤어져있자고 도닥였다. 그 이후에 다시 만나자고, 지금 이렇게 아프고 아쉬운만큼 다시 만나서 아껴주자고. 그 때가 되면 무슨 일이 있어도 헤어지지 않겠다고.
"나는 지금 이것만으로도 미칠 것 같아."
2달동안 죽지못해 살았어. 이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건 이미 그를 본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 한번도 반항이라는 것을 해보지 않은 그가 아무것도 먹지않은 채 투쟁했을 터였다. 그리고 보다못한 그의 아버지가 나를 불렀을 터였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온갖 시나리오에, 너무나도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그 날 내가 고백을 하지 않았다면 우린 바뀌어 있었을까. 작은 미련과 후회는 남아있었어도 이렇게 아프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만나면 하고싶은 말이 그렇게도 많았지만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한 채 아무말 없이 꼭 그러안고만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서있었고 약속한 시간이 훌쩍 넘었지만 저쪽의 나름의 배려인지 재촉은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해가 넘어가 별이 푸르스레 보일 때까지 축축히 젖은 이별을 맞이해야했다.
몰라... 못쓰게써...
진단메이커로 돌렸는데 꽤나 좋은게 나와서... 사실 미완...ㅜㅜㅜㅠ 사실 아버지가 반대하시던 말던 개썅마이웨이로 사귀는 화적이 보고싶었다. 뒤에 에필로그같은것도 생각해놨는데 너무 기력이 딸려서 포기ㅋㅋㅋㅋㅋㅠㅠㅠ 카가미가 아카시 만나려고 엄청 열심히 공부하고 미국에 있는 대학원까지 진학해서 미국 컨설트기업에 들어갔는데 기업에 들어가고 2년 뒤에 아카시를 회사에서 만나는거 보고싶었다. 그리고 눈물의 재회를 하고 바로 둘은 결혼(?)했답니다/퍽!